.제60회 2006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대회를 다녀와서...
[참가번호: F조 7618번 한석희, 목표 sub-4]
2만 여명의 건각들 그리고 함께 온 가족들을 합쳐서 약 6만 여명이 함께한 가을의 전설 2006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축제는 성황리에 끝났고 이제는 내년을 기약하게 되었다. 모두들 지금쯤 일상으로 돌아와 차분한 맘으로 생업에 종사하고 있을 즈음 나는 대회에 참가하여 몸소 체험한 교훈들이 그냥 흘려버리기에는 너무 소중하여 참가후기로 흔적을 남기고자 한다.
나는 대회 하루 전 아내, 딸과 함께 현지에 도착하여 편안한 맘으로 전야를 즐겼다. 동해시에서 마라톤클럽 버스가 새벽 5시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아침잠을 충분히 자고 싶었고 그리고 가족동반이다 보니 하루 먼저 오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저녁식사 후 산책 겸해서 대회가 치러지는 춘천 공설운동장에 나가보았다. 벌써 대회분위기가 이곳저곳에서 느껴진다. 파워젤, 마라톤모자, 마라톤시계 등을 파는 길거리 상인들은 벌써 판을 벌리고 있다. 대회 경비원들은 행사장 주변을 정리하며 시설물들을 관리하고 있고, 이번 마라톤 대회의 주 스폰서인 아식스 회사에서 설치한 텐트들이 길게 줄서 있는가 하면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는 외벽에는 각종 대회관련 표어를 담은 현수막으로 도배되어 있다. 한 켠에는 간이 화장실들이 길게 도열하고 있고 남,녀 탈의실, 물품보관실 등도 완벽히 준비되어 있었다. 모든 것 하나하나가 규모가 커서 메머드(mammoth)급 대회임을 실감시킨다. 2만여 명의 달리기 매니아들이 이제 하룻밤만 지나면 이곳에서 주인공으로 거듭날 것이며 그 무리 중에 내가 우뚝하니 서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심장엔 작은 파란이 일고 허벅지 근육에 은근히 힘이 들어간다. 2005년 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참가하는 나는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그 이유로는 첫째, 늘어난 훈련량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7,8,9,10월 달린 거리 총 누계가 약847km이었던 것에 비해 올해는 약1057km를 달려주었다. 그리고 지난해에 비해 웨이트 트래이닝쪽도 좀더 보완해 주었다. 특히 레그컬과 익스텐션, 팔굽혀펴기 그리고 복근훈련도 강화시켜주었다. 둘째, 지난해에 비해 훈련 페이스가 향상되었다. 지난해의 대회전 4개월(7,8,9,10월)의 평균 훈련페이스는 5'59"/km 에 비해 올해 4개월 동안은 5'47"km로 향상되어 12초/km가 빨라졌다. 특히 대회에 임박한 10월의 경우는 5'58"/km에서 5'42"/km로 16초/km가 단축되어 가시적인 실력향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아주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년 대회에서는 완주하는 동안 평균페이스가 5분54초/km였는데 올해 대회의 평균페이스는 5분43초/km로 약 11초/km가 향상되어서 4개월간의 훈련때 향상된 측정치 12초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이부분을 잘 적용하면 내년 대회직전에 미리 결과를 예견해볼 수도 있으리라 생각돤다. 마지막으로 대회를 지난해보다 성실하게 준비했다. 카보로딩(carbo-loading)도 흉내 내었고 테이퍼링(tapering)도 준수했다. 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나는 자신감을 갖고 대회에 임할 수 있었다. 가슴이 설레인다. 난 그 기분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졌다.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내가 속한 동해 마라톤 클럽 회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여기 춘천 현지인데요...” 그리고 이어서 클럽회원 중에서 가장 편한 느낌을 누는 홍보팀장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대회이브의 분위기를 간략히 스케치해드렸다.
어떻게 하룻밤이 지났는지 아침에 눈을 뜨니 5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큰 대회를 앞두고 있지만 의외로 잠은 태평하게 잘 잤다. 어떤 이는 긴장해서 잠을 설치기도 한다지만 난 한 번도 그런 적은 없다. 뒤통수에 그 어떤 물체만 닿으면 잠이 오는 나의 무딘 성품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아내가 정성대해 준비해준 찰밥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9시가 좀 넘어서 공설운동장 직4분 맞은편에 설치된 클럽아지트에 도착했다. 이미 춘천에는 20분전에 도착했다는 회원들과 반갑게 악수인사를 일일이 나누면서 반가운 정을 나눴다. 대부분 회원들이 풀코스 경험이 여러 번 있어서인지 차분하게 준비에 임하는 모습이다. 로션을 바르고 스트레칭을 하고 그리고 자원봉사 사모님들은 요리도구를 정리하시는 모습이 정겹고 고맙기 그지없다. 단체 기념사진도 촬영하고 각자 완주를 다짐했다.
드디어 10시가 되어 엘리트 선수들이 출발했다. 올해도 케냐에서 날아온 무타이 선수가 강력한 우승후보라고 한다. 그렇지만 무타이는 조연에 불과했다. 우리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난 F조에 참가번호7618번으로 10시9분02초에 출발 감지선을 통과했다. 마라톤 시계의 시작버튼을 꾹 눌렀다. 운동화에 달린 칩과 감지선이 서로를 인식하면서 울려펴지는 뚜----우 소리가 길고도 험한 105리 마라톤의 시작을 알린다. 한꺼번에 수십 개의 칩이 감지되다보니 마치 오르간 건반이 묵직한 물체가 눌려서 나는 지속음처럼 들린다. 나는 아주 편안하게 한발 한발 앞사람의 뒤꿈치를 따랐다. 추월하지 않고 다소곳하게 흐름을 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작년대회에서는 H조에 속해서 출발했었다. 그땐 앞사람들의 페이스가 꽤 느렸었다. 그들의 굼뜬 속도 때문에 조바심이 날 정도였다. 그렇다고 계속 추월하여 달리는 것도 힘들었고 하는 수 없이 지나치게 느리게 달릴 수밖에 없어서 짜증났던 기억이 생각났다. 그런데 F조의 경우에서는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실력들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주자들이라서 내가 원하는 속도로 달려도 내 앞에서 부딪치는 주자들이 거의 없었다.
어느 덧 5km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초반 5km까지의 페이스 조절이 가장 중요하다고 귀에 딱지가 생길정도로 들었기에 무리하지 않고 달려온 뒤 소요시간을 확인해보니 27분35초이다. sub-4를 위해 준비한 페이스 차트 기록(28분20초)에 비해 약간 빠르다. 지난해에는 인파에 방해받아서 이 구간의 페이스가 6분20초/km를 기록했는데 올해는 5분52초/km로 산뜻한 출발을 하고 있다. 곧이어 의암호가 펼쳐졌다. 맑은 쪽빛 물 색깔은 변함없이 장관이다. 흐드러지게 화려한 자태를 뽐내리라 기대하며 시선을 왼편 산자락으로 옮겼다. 그런데 실망이다. 단풍컬러가 이게 뭔가! 누리틱틱한 바탕색에 가뭄에 콩 나듯이 울긋불긋 근처에 가다 만듯한 색상이 드문드문 눈에 띈다. 10월의 끝자락이라서 그렇겠다고 억지로 이해해주기로 했다. 그 대신 도로를 꽉 메운 달림이들의 멋진 레이스 의상이 상대적으로 더욱 돋보인다. 그러고 보니 빛바랜 단풍잎들이 오늘의 주인공들을 더욱 눈부시게 만들어주며 조연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다. 늘 그러듯이 의암댐교 건너기 전 터널을 통과하면서 꽉 다물었던 입을 크게 벌리면서 고함을 쳐본다. 터널천정에서 턴한 메아리가 더 큰 반향으로 귀전을 세게 때릴 때면 기가 더해져서 다시한번 악을 써본다. “아~~~~~~~~~~~”
붕어섬 초입 10km지점에 이른다. 소요시간 55분33초/준비한 페이스차트에는 56분40초... 현재 페이스가 너무 환상적이다. 특히 작년의 경우는 58분44초였고 차트시간보다 2분이 늦어서 바로 이 지점에서 조바심에 휩싸였고 sub-4의 목표가 어렵겠다고 예감을 일찍 했었던 기억이 난다. 신난다. 날씨는 화창하고 오른편에 펼쳐진 의암호가 한결 더 푸르러 보인다. 의암호 건너편에 보이는 터널에서는 좀 전에 내가 지나오면 외쳐댔던 것처럼 우렁찬 고함소리가 의함호를 건너 이쪽까지 울려 퍼진다. 의암호를 에워싼 달림이들의 인간띠가 정말 장관이다. 42.195km의 긴 코스 중에서 이 구간의 풍경이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된다. 건너편엔 달림이들이 빤히 보이고 터널 외침소리에 두 다리는 에너지를 듬뿍 재충전하는가 하면, 푸르른 의암호를 사이에 두로 절정에 이른 가을 단풍잎들(올해는 좀 아니지만)은 우리 주인공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이는 춘천의 자랑이고 아니 세계의 명품이라고 여겨진다. 놓치기 아까운지 오늘만 연출되는 그림을 감상하려고 연신 저공 헬리콥터가 의암호 상공 때로는 우리 바로 옆을 스치며 지나간다. 곳곳에서는 카메라맨들이 셔터 누르기에 바쁘다. 좋은 공간을 확보한 후 V자 한번 취해준다.
15km지점이 통과하고 있다. 경과시간 1시간22분53초/차트시간 1시간25분이고 2분7초 빠르게 통과하고 있다. 매5km마다 급수대가 있다. 나는 올해 초 서울 국제동아마라톤대회 때 4번이나 레이스 중에 소변을 보게 되어 짜증났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 대회에서는 초반에 물을 마시지는 않고 목을 축이기만 했다. 15km지점에서도 한 모금정도만 마시고 그냥 통과했다. 그리고 각2.5km와 7.5km지점에서는 물 적신 스펀지를 제공했는데 마라톤에 입문해서 3년이 경과된 지금까지 대회에 참여하면서 한 번도 스펀지는 집어든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한여름 혹서기에도 말이다. 조금을 더 지나고 있을 무렵 힘찬 아줌마의 응원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서면박사마을의 유명인사 아줌마였다. 검은색 고깔모자에 확성기를 들고 지칠 줄 모르는 애드립(ad lib)으로 달림이들의 기운을 돋구어주고 있었다. “오빠, 멋쟁이, 최고 멋져, 힘힘!” 서서히 다리에 피로의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할 시점에 매년 대회 때마다 우릴 반겨주는 이 아줌마의 열정에 V자로 답례를 드리고 16km 푯말 직후 펼쳐지는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몇몇 사람들은 걸어 올라간다. 옆 사람의 호흡하는 소리가 꽤 거칠게 들려온다. 나는 아직은 호흡이 안정적이다. 조금 더 가면 20km이다. 나는 첨으로 파워젤 한 개를 개봉한다.
20km지점이다. 경과시간 1시간50분13초/페이스차트시간 1시간53분20초, 3분7초 빠르다. 힘이 솟는다. 이번에는 sub-4 달성하는가보다. 온 몸에 희망으로 가득 찬다. 기쁨이 샘솟는다. 달아오른 몸에 급수를 해주니 한결 힘도 더해진다. 지난 3년간 하프코스를 약20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아직 몸이 잘 견뎌 주고 있다. 21km지점부터 오르막이 시작되어 25km 서상교까지 지속되었다. 주변 달림이들의 속도가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 힘에 부치는가보다.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이 오르막 구간을 5분36초/km페이스로 달렸다. 이 구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추월했다. 마치 영화 ‘말아톤’에서 주인공이 열심히 뛸 때의 장면이 생각난다. 주변은 슬로우 버젼이고 주인공만 속력을 낸다. 제트엔진을 달고 뛰듯이... 기분이 묘하다. 바로 런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느끼는 순간 같았다. 22-23km구간은 5분24초/km페이스로 달리기도 했다.
25km지점이다. 경과시간 2시간18분19초/페이스차트시간 2시간21분40초 여전히 3분22초 빠른 페이스다. 약간의 갈증을 느낀다. 걱정이다. 갈증을 느낀다는 것은 수분공급이 부족했고 이미 적정시기를 놓쳤다는 의미인데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한다. 서상2교에 올라서서 잠시 숨을 고르니 약간의 오르막이 펼쳐진 후 내리막이 시작된다. 1km마다 설치된 거리 푯말이 서서히 멀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걸 보니 몸에 피로가 쌓인 모양이다. 그리고 한번 느낀 갈증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 대회에서는 30km부터 체력이 현저히 떨어졌고 1km소요시간이 6분을 넘겼었다. 올해는 훈련량도 충분하니 5분대의 지속주를 한번 해보자고 맘을 다시 다잡고 힘을 내었다. 정신력을 가다듬고 나니 몸도 따라주는 듯 다시 힘이 생겨난다. 완만하고 길게 느껴지는 오르막을 정신력으로 달리다 보니 30km지점이 다가온다. 두 번째 파워젤을 뜯었다.
30km지점에 이르렀다. 경과시간 2시간46분16초/페이스차트시간 2시간50분 여전히 3분44초 앞서고 있다. 그러나 희망이 좀 줄어들어있었다. 몸이 매우 무겁기 때문이다. 물을 두 컵이나 남김없이 마셨다. 그리고 길가에서 스트레칭을 했다. 뻣뻣해진 허적지, 장단지 그리고 허리는 유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스트레칭하려고 다리를 굽힌다거나 허리를 굽히려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몸을 달래주니 꽤 시원한 느낌이 든다. 물을 두 컵이나 마셔서인지 다시 출발하는 기분이 톱니바퀴 겉돌 듯이 어색하고 몸이 무겁다. 그래도 한 발자국씩 옮기다 보니 100m도 못가서 달리는 자세 다시 되찾는다. 갈증이 점점 더 심해진다. 처음에는 5km마다 급수해주는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는데 날씨가 더워지고 갈증을 느끼게 되면서 급수지점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특히 매5km지점에 정확히 급수하지 않고 약300m더 지나서 급수가 이루어질 때 그 300m를 더 달려가기가 무척 힘겨웠다. 어떤 사람이 내 심정을 대신 표현했다. “5km마다 급수하는 것 너무 멀어!!!”“맞어, 맞어” 세 번째 파워젤을 뜯었다.
35km지점이다. 경과시간 3시간17분18초/페이스차트시간 3시간18분20초 어이쿠! 1분2초 앞서고는 있지만 시간 간격이 많이 좁혀져 있었다. 난 이 지점에서 sub-4목표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고 말았다. 다만 지난 대회의 4시간08분43초의 기록 경신에 목표를 두기로 맘을 고쳐먹었다. 시내로 들어오니 넓디 넓은 길이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걸음이다. 막막하다. 길이 넓은 만큼 부담도 크게 느껴진다. 시야도 넓어져서 젖산으로 포화상태인 두 다리고 그 넓은 대로의 기세를 꺾기엔 턱도 없어보였다. 난 넓은 대로가 보기 싫어졌고 그래서 모자를 꽉 눌러쓰고 바로 앞만 보고 일정한 보폭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기도 하지...같은 길인데도 내 앞만 보고 달리니 모든 길이 작은 오솔길로 변해 있었다. 한적한 오솔길에 나 홀로 달리고 있었고 아늑한 느낌속에서 제법 속도감도 느낄 수 있었다. 대형 고급 세단을 운전하다 보면 시속100km로 달려도 속도감을 별로 못 느낀다. 그런데 경승용차로 같은 속도를 내면 엄청나게 빠르게 느껴진다. 모자를 꾹 눌러쓰고 넓은 대로를 좁히고 나니 내가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뚜렷하게 느껴졌고 이 느낌은 자신감과 연결되어 레이스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가?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마라톤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하면 시야를 안정되게 해주고 집중력을 향상시켜주는 효과가 있다고... 나는 선글라스를 준비해 가져와서는 깜빡하고 착용을 하지 못했다. 후회감이 머리를 스친다. 소양교를 건너자 더 큰 대로가 나타난다. 약 한달 전 춘천호반마라톤대회 30km대회 참가할 때도 이 지점에서 지칠 대로 지친 몸이 넓은 길이 주는 지루함에 매우 고생한 경험이 있었는데 바로 그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나는 다시 한 번 모자를 꾹 눌러쓰고 길을 좁혀버렸다. 참 신기하기도 하다. 좀 전에도
큰 길에서 시야를 좁혀서 큰 덕을 보았는데 역시 또 덕을 보고 있다. 페이스가 빨라지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덜 피로감을 느끼면서 드디어 40km지점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40km지점 구 시외버스터미널 모퉁이이다. 경과시간 3시간48분08초/페이스차트시간 3시간46분40초 골인지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마침내 1분28초 뒤지게 되었다. 음~~~ 아깝다. 남은 거리 2.195km 4시간 중에 남은 시간은 11분52초... 몸 컨디션으로 보아 쉽지 않다. 물을 두 컵 연거푸 들이킨다. 그리고 앞 사람의 뒤꿈치를 따라잡는다. 머나먼 여정의 피날레가 목전에 있다. 골인지점에서 날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딸의 모습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오래 담아두기에는 힘에 겹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혼신의 힘을 다해본다. 평소 때보다 훨씬 멀어진 길을 한참 달리다가 종합운동 쪽을 향해 우회전하고 조금 더 달려가니 저 앞쪽으로 응원 나온 가족들이 길을 만들어 놓고 있다. 나도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길에 들어설 맘의 준비를 한다.
“여보! 우리 남편! 한석희! 화이팅! 동해 화이팅!” 나를 알아본 아내의 기쁨 넘치는 찐한 감동의 표현들이 마구 끝없이 이어진다. V자 그려주고 하이파이브 해주는 것 이상으로 더 해줄 힘이 없다. 그래도 아내와 딸의 가족애 풀풀 넘치는 환영식은 찐한 감동의 여운을 가슴에 담겨준다. 직4문을 통과하니 빨간 우레탄 트랙이 펼쳐진다. 세상에서 최고로 훌륭한 비단길, 105리의 긴 고난을 극복한 자만이 밟을 수 있는 길이다. 레이스화 바닥을 통해 전달되는 푹신함은 최근에 갓 구입한 아내의 고급차의 그것보다 훨씬 낫다. 골인 아치를 10m앞두고 약간 속도를 늦춰서 카메라맨 앞에서 V자 포즈를 취하면서 이 순간을 영원 속에 담았다. 골인 감지선을 통과하면서 시계의 멈춤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마침내 올해 농사는 끝이 났다. 여름방학 무더위 속에서도 8월 한달 322km를 달려주었고 1주일간 서울로 가족관광을 하면서도 남산조깅코스를 하루도 빠짐없이 달려주었고 설날연휴에도 설날당일만 제외하고 쉬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춘마의 목표인 sub-4는 절대로 과욕이 아니었다. 시계 계기판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4시간1분33초-
(문제점)
1. 정오가 지나면서 최고기온이 달리기에는 조금 더운 날씨임을 대비하지 못함.
급수대에서 5,10,15km지점에서 목을 축이는 정도로 지나쳤는데 조금 더 마셔주어야 했다. 25km지나서부터 갈증을 느끼기 시작해서 피로가 빨리 왔다.
2. 20-25km지점 소양2교까지 오르막에서 오버페이스의 실수를 저질렀다. 이 지점에서 에너지를 마구 사용한 셈이다. 조금만 더 남겨놓고 레이스를 했더라면 30km지나서 페이스가 극도로 저하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었다.
3. 해빛이 있든 없든 선글라스는 반드시 착용했어야 한다. 시야를 좁힐수록 덜 피로해지고 레이스에 큰 도움을 준다. 산만한 주변상황이 다 시야에 포착되어 집중력이 떨어지고 속도감도 떨어져서 균형을 쉬이 잃게 될 염려가 충분히 있다. 이때 선글라스를 착용하면 나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고 아늑하고 편안한 레이스를 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4.스펀지 공급 서비스를 전혀 활용하지 않았는데 기온이 올라갈 경우에는 물먹은 스펀지를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 꼭 입으로 마셔야 갈증을 해소하는 것은 아니다. 열 받은 얼굴, 목 등을 시원하게 닦아줌으로서 신선하게 기분을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이다.
5.메일링 서비스 신청을 하지 않아서 휴대폰 기록 전송을 받지 못했다.
6.회원들과 함께 웃고 대화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같지 못해 미안하고 그리고 아쉽기도 하다. 아내와 딸이 같이 와서 별도로 귀가하는 이유로 클럽버스를 이용하지 못했는데 아쉬움이 많다.
(잘된점)
1.허리벨트 착용을 하지 않고 타이즈 양쪽에 망사주머니를 설치하여 파워젤을 넣으니 너무 편리하다. 항상 허리벨트가 불편했었다.
2.신발 선택을 잘했다. 마라톤에서 신발은 너무 중요하다. 첫 풀 때 나이키 훈련용 무거운 쿠션화를 신었다가 레이스 종반에 매우 고생하며 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 대회에 착용한 뉴발란스 579는 경량화면서도 적당히 쿠션이 있어서 레이스 내내 무릎에 부담이 없었고 별도로 신발무게로 고생하지는 않았다.
3.미리 준비한 페이스 차트가 매우 요긴했다. 10,20,30km 등의 지점에서 목표한 기준 시간과 대조하면서 현재의 페이스를 가늠할 수 있었다.
4.가족과 함께 동행하여 같이 식사하고 잠자고 그리고 아내와 딸의 골인지점에서의 환영으로 기쁨을 두 배로 느낄 수 있었다.
(총평)
만족한 대회였다. 대회운영도 만족스럽고 친절한 춘천시민들의 온정이 더욱 고맙기 그지없다. 급수대에서 물을 따라주던 자원봉사학생들은 끊임없이 화이팅을 외치며 립서빙으로 기를 불어넣어주어서 고마웠고 도로가에서 시원한 물을 자발적으로 공급했던 일반주민들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가웠고 거리 공연하는 분들, 15km지점 박사마을에서 고깔모자 쓰시고 응원하시던 중년부인이 고맙고
불편한 교통통제를 불평한마디 없이 감수하신 기사님들이 고맙고 그리고 자신은 달리지 않지만 클럽자원봉사일원으로 참가하여 풀코스를 자랑스럽게 완주한
회원들에게 먹거리를 마련해주신 우리 클럽 자원봉사자님들이 너무너무 고맙다.
비록 개인목표인 sub-4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최고기록을 7분이나 단축했다. 그 원인을 분석해서 다음 대회에서는 목표달성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내년 대회에서 sub-4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을 몇 가지로 요약할 수있다.
첫째, 초반에 좀더 편안한 레이스가 되어야 한다. 특히 서상2교까지의 약 4km구간의 오르막에서 절대로 무리해서는 안 된다. 길고도 먼 길에서 고작 4km를 잘 달리는 것은 무의미 한 것이다. 더군다나 4km구간이 오르막인데도 불구하고 오버페이스하여 30km이후에서 고생하는 우를 다시는 범하면 안 될 것이다.
둘째, 안정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글라스를 착용해야 한다고 느꼈다. 넓은 대로에서 주변을 보지 않고 모자를 눌러쓰고 바로 앞만 보면서 달리니까 훨씬 덜 힘들고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세째, 급수를 적절히 해주어야 한다. 그 날의 기온 등을 고려하여 종반레이스
할 때 기온이 15도 이상 오를 경우에는 초반에 급수대에서 매번 물을 마셔주어야 한다. 목을 축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몸에서 땀이 날 경우에는 스펀지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상 살펴본 몇 가지를 준수한다면 내년 대회에서는 틀림없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충분한 훈련량을 전제로 한다.
(구간별 랩타임)
11'25"-6'6"-5'15"-5'41"(5km 27'35")
5'37"-5'19"-5'24"-5'32"-5'15"(10km55'33")
5'39"-5'21"-5'21"-5'19"-5'33"(15km1시간22'53")
5'23"-5'36"-10'55"-5'28"(20km1시간50'13")
11'18"-5'24"-11'18"(25km2시간18'19")
5'42"-5'38"-5'24"5'36"-5'37"(30km2시간46'16")
7'08"-6'04"-5'47"-5'56"-6'02"(35km3시간17‘18“)
6'35"-6'28"-17'46"(40km3시간48'08")
6'15"-7'11"(골인4시간1분33초)
※10분이상은 2km주파시간이고 15분이상은 3km주파시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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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같은 1분 그리고 금빼지
2006춘천마라톤 SUB4실패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