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가 황새 흉내 내다가... (38번째)
1. 대회개요
○ 대회명 : 제8회 해남땅끝마라톤대회
○ 일시 : 2010. 2. 7(일) 10:00
○ 장소 : 해남 우슬경기장
○ 주최 : 해남군, (주)해남신문사
○ 코스 : 우슬경기장~어성교 왕복
○ 종목 : 4종목(5km, 10km, 하프, 풀)
○ 참가비 : 30,000원 (풀 / 종목별로 10,000~30,000원)
○ 기념품 : 해남 황토 호박고구마(5kg), 겨울 배추 3포기, 메달
/ 간식, 먹거리
○ 총경비 : 134,100원(참가비 포함)
○ 기록 : 04:01:37 (250위 / 393명)
○ 우승(풀) : 김효상 / 02:42:55
2. 참가배경
서울에서 개최된 보라매공원 도림천 마라톤대회 후 2주 만이다. 올해 들어 통영, 여수에 이어 남해안에서 개최되는 대회에 연속 참가한다. 대회 선택의 여지가 그리 넓지 못한 탓도 있지만 남해 쪽에서 열리는 대회 나름의 매력이 있다. 청정 해역과 다도해, 옛날의 향수가 느껴지는 농촌·어촌의 여유 있고 평화로운 전원풍경, 주로 변에 나오셔서 정겹게 맞아주는 동네 어른신과 같은 할아버지·할머니의 모습들, 푸짐한 우리 농·수산물 기념품과 대회가 끝난 이후의 풍성한 맛깔스런 음식들이 힘든 여정이지만 발걸음을 유혹한다, 그동안 선진지 견학이라는 이름으로 해남을 두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처음 해 본 해수찜질과 남해안 산 생선회의 맛이 아직도 입안에 감도는 듯해서 한 번 가보기로 하였다.
해남은 한반도의 땅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염되지 않은 넓은 농토와 청정해역을 가지고 있다. 고산 윤선도 선생님의 유적지,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지인 을돌목, 우항리 공룡화석지, 땅끝관광지, 후덕한 인심과 남도음식의 먹거리 등을 해남군이 대표적인 자랑거리로 내세우고 있다.
3. 대회장에 도착할 때까지
2월 7일 18시 20분에 짐을 챙겨 집을 나선다. 터미널 까지는 30분 정도 걸리는데 운동 삼아 걸어가기로 하면서 늦은 귀가시간에 맞추어 아내가 승용차는 터미널에 가져다 놓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19시 05분 동서울 행(15,300\) 시외버스를 이용 서울에 도착하니 22시 05분이다. 버스 승객이 7명밖에 되지 않으니 자리를 넓게 사용해서 좋긴 한데 남의 일 같지 않다. 늦은 저녁식사를 하러 단골집인 들녘식당에 도착하니 문을 닫는다고 한다. 몇 곳을 기웃거리다가 오모가리 김치찌개집을 찾아들어가 김치찌개(5,000\)를 시켰는데 들녘과는 비교가 되지만 ‘5천 원짜리 식사가 이 정도면 됐지’하는 마음으로 남김없이 먹는다.
01시에 출발하는 해남 행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22시 50분에 강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잠실종합운동장역으로 이동을 한다. 지하철 막차 운행시간을 알지 못하므로 우선은 버스 출발장소에 빨리 도착해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23시부터 01시 50분 까지는 잠실역 옆에 조성된 86아시안게임 기념공원인 ‘아시아공원’을 구석구석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송파문화예술회관과 송파문화원, 야외공연장 3곳과 분수대, 근린체육시설과 지압보도, 기념조형물과 역대올림픽 마스코트 전시대, 울창한 나무 숲 사이로 난 산책로 등 그리 넓지는 않지만 오밀조밀하고 아름답게 잘 조성되어 있다.
2월 7일 01시가 가까워지자 대회참가자인 듯한 분들이 한 분씩 모인다. 00시 50분에 ‘무지개관광’ 셔틀버스가 도착, 대기자가 모두 탑승하니 40여 명은 됨 직하며 01시에 해남을 향해 떠난다. 02시 40분에 정안, 04시 40분에 함평천지휴게소를 거쳐 06시 20분에 해남의 ‘팔도강산’식당에 도착한다. 휴게소에 도착할 때 잠깐씩 눈을 뜬 것을 제외하고는 비몽사몽하며 불편한 잠을 잤다. 소머리국밥(6,000\)으로 아침을 해결하는데 콩나물이 들어가 있으며 처음 맛보는데 먹을 만하다. 06시 45분 옆에 있는 해남온천관광랜드로 들어가 사우나(4,000\/50% 할인)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한증탕, 온탕, 냉탕, 마시지탕을 오가며 수영도 하고 스트레칭을 하니 찌뿌드드한 몸이 조금은 풀리는 듯하다.
08시 30 분에 버스를 타고 대회장에 도착하니 08시 50분이다. 아직은 이른 탓인지 사람들이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국토의 남쪽 끝이라고 해서 날씨가 포근할줄 알았는데 찬바람도 제법 불고 온몸이 으스스하다. 이런 날씨에도 핫팬츠에 조끼유니폼을 입고 뛰어다니는 강인하고도 용감한 남녀 선수들이 많이 보인다. 나는 잔뜩 껴입은 상태에서도 추위를 느끼는데 볼수록 주눅이 들고 부러운 마음만 생긴다. 기념품인 고구마와 배추를 배부하는 곳에는 벌써 긴 줄을 이루고 있으며 뒤따라 서서 순서를 기다린다. 강원도 동해시 까지 가지고 가기가 쉽지 않으므로 택배를 요청하니 고맙게도 해준다고 한다. 옷을 갈아입고 짐을 맡긴 후 화장실을 다녀온다. 트랙을 도는 선수들을 따라 한바퀴 돌고 맨손체조를 하며 계속 몸을 움직이지만 추위는 가시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슬경기장은 인파가 운집하고 대회분위기가 고조된다.
4. 대회 참가 및 완주
보통은 의식행사 등을 많이 생략하는데 국민의례에 이어 대회장, 군수, 국회의원 등 주요 내빈들의 연설이 계속 이어진다. 에어로빅팀의 공연에 이어 스트레칭을 하고 풀코스부터 스타트라인으로 이동한 후 폭죽소리와 함께 10시 정각에 출발을 한다. 복장은 귀를 덮는 모자, 썬글라스, 긴팔 셔츠 위에 바람막이 옷, 2중 장갑, 긴 타이즈, 프로월드컵 운동화로 갖추었다.
경기장을 나가자마자 바로 내리막이이 보이므로 골인할 때 고생 좀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기장이 외곽에 있는 까닭에 주로 변은 한적하고 얼마 진행하지 않아 만나는 국도는 1~2개 차로를 통제하고 있는데 차량 통행이 별로 없어 차가운 공기가 맑고 상쾌하게 느껴진다. 중간 정도의 위치에서 뛰는 것 같은데 속도가 너무 빠르다 싶지만 춥기도 하므로 늦출 마음은 없어 보조를 맞추며 계속 뛰어 간다. 3km에서 첫 번째 급수대가 보이지만 그냥 통과한다. 이후 2.5~3km 간격(총 16개소)으로 물이 충분하게 공급되었으므로 갈증은 느끼지 않았고 2~3곳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곳에서 물을 마셨다.
집단부락의 버스 승강장이 있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였는데 추운 날씨임에도 손을 흔들어 주시고 “화이팅 !” “힘내라 !”를 외치면서 선수들을 격려해 주신다. 요즘의 농어촌에는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고 어르신과 손자들만 있다는 말은 통영과 여수에 이어 이곳에서도 실감이 난다. 하지만 볼거리도 없는 달리미들에게 이보다 더 큰 힘이 있겠는가 ? 반환점을 돌 때 까지 농악대를 4 번, 어르신 응원단을 10 여 번 정도는 본 것 같다. 또한 마을 앰프를 이용하여 흥겨운 음악을 틀어 주는 곳도 5~6곳은 되는 것 같다. 그저 달림이들과 대자연을 벗 삼아 달리는 것도 좋지만 보아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것이 마냥 고마울 뿐이다.
5km를 10시 24(24‘)에 통과하며 물을 한 컵 마신다. 이렇게 빨리 뛰어본 적은 아직까지 없는데 추운 날씨 땜에 아직까지도 땀은 나질 않는다. 03:30 페메를 앞서서 달리지만 몸의 어느 한 곳도 이상 징후가 보이지 않으므로 여수에서 세운 최고기록에 욕심이 생긴다. 그러나 이것이 내 몸과 체력의 한계를 모르고 까불었다는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아 확인되었다.
10km를 10시 46분(22’)에 통과하였고 12.5km에서 바나나 반 개를 먹는다. 15km를 11시11분(25‘)에 지나면서 주로를 벗어나 소변을 본다. 17.5km에서는 파워젤과 오이를 먹고 18.5km에서 남자 선두를 만나는데 진천군청 소속이다. 전혀 지친 기색은 없고 보폭은 100m를 달리는 것 같다. 19km를 지났을까 오른쪽 사타구니쪽 관절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속도를 늦추면서 11시 38분(27‘)에 20km를 지나니 여자 선두가 마주 오는데 작고 단단한 체구에 힘이 넘치며 미소를 띠면서 달리는 모습이 마냥 부럽다. 22.5km에서 반환점을 돌며 쵸코파이와 바나나를 먹고 허리와 다리 근육을 풀어준다.
03:30 페메가 앞서가는 모습을 보며 다시 주로로 들어간다. ‘시작이 반’ 이라는데 ‘반 왔으니 끝난 것 아닌가’ 라고 되뇌지만 한 걸음씩 떼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25km를 12시 04분(26‘)에 지나니 양 무릎과 허리의 통증이 상당히 심하므로 응급요원으로부터 에어파스 도움을 받는다. 초반부터 ’뱁새가 황새 흉내 내다‘ 이 지경이 됐다 싶지만 되돌릴 수도 없다. 아직까지는 03:30 페메가 2~30 여m 앞에서 계속 보이므로 힘을 내어보자고 애는 써보지만 갈수록 힘들다.
24km를 지나면서 반가운 김무조 어르신의 모습이 보인다. 지금까지 내가 참가했던 거의 모든 대회에서 뵈었으며 혹시나 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참가하신 것이다. 걸음걸이도 편치 않아 보이시는데 정말 대단한 체력을 가지셨고 존경스럽다. 26km를 지나니 석병환 어르신의 모습이 보인다. 서울에서 셔틀버스로 같이 오셨는데 뛰시는 것이 아주 힘들어 보인다. 많은 연세에 밤새도록 불편한 버스에서 시달렸으며 바로 풀코스에 참가를 하셨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힘내세요.” 하는 나도 기진맥진해 있는데 어떻게 완주하실까 하는 걱정의 마음이 생긴다.
30km를 12시 32분(28’)에 통과하고 31km를 지나니 도저히 뛰지 못할 정도로 무릎, 고관절, 허리에서 극심한 통증이 온다. 32~33km는 아예 뛰기를 포기하고 걷는데 그것조차도 힘들다. 안 되어 보였는지 앰블런스가 멈춰 서서 괜찮은가 묻는다. 여기서 포기하고 말 수는 없으므로 걱정하지 말라고 그냥 보낸다. 걷다 뛰기를 반복하다가 35km를 13시 15분(43‘)에 통과하면서 바나나 1개와 쵸코파이 반 개를 먹고 잠깐 쉰다. 03:30 페메는 시야에서 사라진지 벌써 오래 되었고 03:45 페메도 앞세워 보낸다. 대략 15km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계속 해오던 많은 남여 선수들을 이 구간에서 모두 앞세워 보내고 만다. 4시간은 벌써 물 건너갔으며 걸어도 5시간 안에는 가능할 것 같다만 마지막까지 힘을 내보자고 자기최면을 자꾸 걸어본다.
30km를 지나면서 간혹 보이던 걷는 모습들이 갈수록 많아진다. 나도 힘든데 다른 사람들도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5km를 푹 쉰 탓인지 통증도 줄어들고 달릴 힘이 다시 생긴다. 37km를 지나니 발바닥이 아파서 걸음을 딛지 못할 정도이다. 잠시 멈추어 섰다가 걷기를 몇 분간 정도 한다. 38~41km 구간은 오르막이 계속된다. 잘만 하면 4시간 안에도 가능하다 싶어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자며 바닥난 힘을 다시 끌어내고 온 몸의 통증을 참으며 계속 한걸음씩 힘겹게 내딛는다. 40km를 13시 46분(31‘)에 통과한다. 이제는 뛰기 보다는 걷는 모습이 더 많아 보인다.
30~35km에서 나를 앞서갔던 분들을 한 명씩 추월해가니 41km는 내리막이다. 힘껏 달려 내려가니 바로 오르막이 시작된다. 아무리 용을 써보아도 마지막 오르막에서는 또다시 걷고 만다. 언덕에 오르니 다시 내리막이므로 다행이다 싶다. 여기서부터 골인지점 까지는 처음 출발할 때의 속도로 뛰었던 듯싶다. 대략 마지막 3km 정도에서 50~60여 명은 따라잡은 것 같고 14시 1분을 넘기면서 결승점을 통과한다. 최종기록은 04:01:37로 나왔으니 나로서는 너무나 안타깝다. 조금만 더 아픔을 참고 노력했으면 4시간 안의 기록도 충분히 가능했기 때문이다.
5. 귀향 및 완주 소감
물을 한 통 받아 마시면서 칩을 반납하고 물품을 찾는다. 먹거리를 배부하는 장소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차례를 기다려 주먹밥, 두부, 김치, 미역국, 울금과 고구마 막걸리, 한우 등심구이, 돼지 불고기와 바베큐 등을 받아 놓으니 훌륭한 점심식사가 된다. 울금막걸리는 맛이 좋아 한 통(900㎖)을 더 얻었고, 받은 음식을 남김없이 깨끗이 먹고 나니 과식했다 싶을 정도로 배가 두둑하다. 간이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 준다. 아직도 늦은 완주자들이 골인하는 모습이 계속 보인다. 15시 20분에 대기 중인 버스로 이동하였고 탑승자 확인을 모두 끝낸 후 15시 50분에 해남을 떠난다.
버스 안에서는 한국마라톤기획 대표님이 소주잔을 돌려 석 잔을 마셨고, 옆 자리에 앉은 광화문페이싱팀의 회원과 마라톤을 주제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눈다. 피곤한 탓에 자다 깨다를 몇 번했고 함평천지 및 부여백제 휴게소를 거쳐 21시에 잠실운동장에 도착을 한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고속터미널에 도착하니 21시 30분이다. 23시 40분 동해 행 표를 구입한 후 터미널 안의 ‘고향의 맛’ 식당에 들어가 제육볶음(5,000\)을 안주 삼아 소주 한 병으로 완주를 자축한다. 땀으로 범벅인 된 몸이 찜찜하고 시간여유도 있으므로 22시 30분에 ‘라파터미널대중탕’을 찾아 들어가 목욕(6,000\)을 하는데 조금 비싸다 싶다. 온탕에서 발과 다리를 마사지 해주고 한증탕과 냉탕을 오가면서 몸을 풀어주니 한결 낫다. 23시 40분 버스를 타고 횡성휴게소에 잠깐 들른 후 동해에 도착하니 02시 25분이다. 아내가 터미널 부근에 가져다 놓은 승용차를 찾아 타고 집에 도착하니 02시 45분을 지나고 있다. 조용히 했는데도 잠에서 깨어 반겨주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38번째 마라톤 여행을 마친다.
집을 나서 해남까지 가는 데 12시간, 달리기를 끝내고 대회장을 떠나 귀가하는데 11시간이 걸렸다(왕복 이동거리 1,276km). 내게는 단지 오랜 시간동안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피곤하고 힘든 일이며 차를 타거나 운전하는 것을 그리 즐겨하지 않는다. 최근에 남쪽 끝에서 열리는 대회에 여러 번 참가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은 하게 된다. 하지만 요즈음엔 운동 부족이 문제라고 하지 좋아하는 운동 실컷 하는데 무슨 상관있겠나 싶다.
뭣 모르고 03:30을 넘겨보다가 죽도록 혼났다. 조금만 더 무리했다면 아마도 중도에서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적당한 지점에서 잘 포기했다 싶다. 늘 대회에 참가하면서 ‘한 번 뛰고 말 것도 아닌데 너무 무리하지는 말자’가 신조인데 뱁새가 제 주제도 모른 채 황새를 따라하려고 너무 까분 것이다. 앞으로는 정말 힘들이지 않고 즐기면서 달리기를 다시 다짐해 본다. 부상 없이 건강하게 다만 한 곳이라도 더 다녀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대회의 성공개최를 위해 애쓰신 해남군의 모든 관계자, 특히 주로에서 우리들을 반겨주고 응원해 주신 어르신과 교통 불편을 참아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더불어 이 대회의 역사가 오래될수록 더욱 발전하여 전국 최고의 대회로 우뚝
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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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해외마라톤 완주, 그리고 백두산 천지 오...
뱁새가 황새 흉내 내다가...*38번째)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