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시작한지 이제 약 4년이 넘어서니 춘천마라톤 일주일 앞두고 아내는 의례, 아니 습관적으로 소고기에 양념을 재놓고 있었다.
초창기 때는,
아내 : (시큰둥하며) 이 비싼 고기 먹는다고 뭐 도움되겠어!
런맨 : (꼬리 내리며) 도움 된데...
지금은,
런맨 : (미안한 마음에)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이 소고기 먹는다고 뭐 도움되겠나?
아내 : (당연한 듯이) 둘 중에 하나라도 잘해야지, 훈련을 못했으면 잘 먹기라도 해야지!
지난 주, 점심때 아내가 기가 막힌 일이 있다며 새겨들으라고 얘기 해주었다.
글쎄, 큰놈이 먹다 남은 과자봉지를 평소에 두던 장소에 놓지 않고 다른 곳에 숨겨 놓는 행동을 하는 듯 해 아내가 왜 그러니 하고 물으니, 엄마한테 하는 말이, 아빠가 다 먹을까봐? 요즘 들어 아빠가 과자를 너무 잘 먹고, 남겨 놓기만 하면 싹 비워버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뿌셔뿌셔"를...
각종 대회 때마다 식이요법 한답시고 개구쟁이들이 먹다 남은 탄수화물 덩어리, 과장봉지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더니만 요것들이 이유 있는 항변을 하더라는 내용이다. 치사한 놈들 기껏 과자가지고... 내가 사 준 과자만 해도 수도 없을 터인데...
결국, 이 놈들, 거사일(?) 잡을까봐 두려워 이번 춘천대회 때는 먹다 남은 과자 봉지 건들 수 없었고, 직접 내가 과자 사다 먹었다.
이런저런 수모 겪으며 금년에도 원주 처갓집 거쳐 춘천대회 다녀왔다.
기대 이상의 큰 수확도 얻은 대회였다.
`99년, 생애 처음으로 단축마라톤(하프)을 춘천서 완주하였고 이듬해부터 춘천풀코스 도전 4년 만에 금년 봄 동아대회 이후 두 번째 서브-3(02:58:26) 달성하게 되었으니...
아내도 매년 대회 따라다니다 처음으로 주최측 이벤트행사 퀴즈 참가해서 (아식스)큰 타월을 상품으로 탔으니 일명, 10월19일은 도씨 집안 쌍 경사 날!!!
매년 동해마라톤회원들이 모여 몸푸는 장소에 약 1시간 일찍 도착했다.
순수 참가선수인원만 21,000명이라는 마라톤대회 국내 최대 규모에 몇 년째 참가한 나 자신도 입이 벌어질 정도였으니 첫 도전에 임하는 참가자 및 가족의 느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대회 분위기는 참가선수, 차량과 현수막, 동호회 천막 등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했다.
출발시간 약 40전에 회원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단체사진 한 컷하고 회원들 운동장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이번 춘천대회는 정말 기록욕심에 마음을 비웠었고, 그나마 제주대회 이후 남은 기간동안 훈련에 임한 것은 그간 열심히 훈련에 임한 상문이와 재영이의 좋은 결과(서브-3!)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충분한 기량에 늘 초반에 빨리 달려나가는 이 후배들의 페이스 유지차원에서 가능한 한 약 15-20km까지 페이스 메이커로 동반주 해주고싶어서였다.
그러나, 실제 출발선상에서는 두 후배가 아닌 막내 범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주로 상에서 혹시나 만나지 않을까 해서 예상시간대로(10km당 41-2분대) 달려나가기로 했다.
범수가 오버페이스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 페이스대로 약 20km까지는 유지할 생각이었다. 약 5km 지점에서 상문이가 나를 앞서나갔다. 중간에 동반주 하기는 이미 불가능해 보였다.
페이스를 자중하며 잘 달려나갔으면 하는 내 마음이 전해졌으면... 약 15km까지 예상페이스로 달리다 왼쪽 마라톤화 끈이 풀린 것을 보았다. 범수에게 앞서 가라 하고 운동화 끈을 서둘러 묵고 달리니 그새 재영이가 앞에 달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분이 좋았다. 지금껏 잘 참고 달려온 것이... 한편으론 대회전 심한 감기 때문이 아닌가하고 걱정도 되었다. 다행히 페이스를 스스로 늦추며 왔다는 답변에 한숨 돌렸다. 이제는 20km가 아니라 내가 가능할 때까지 함께 달기고 싶어졌다. 숨소리가 거친 나와는 반대로 재영이는 오히려 차분하게 달리는 모습이었다.
춘천댐 올라가는 언덕에서 좀 버거움을 느꼈다. 끝까지 함께 할 자신이 없다가도 이러면 안 된다 싶어 10km남겨둔 32km까지는 악착같이 함께 달릴 각오로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달렸다.
30km(03시간 05대)지점을 지나며 남은(1시간)에 1km당 5분대면 서브-3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들었다. km당 5분유지로 달리자며 재영이에게 말하고 약 32km를 지나니 상문이가 앞서 달리고 있었다. 근육경련이 일어나 달리기 힘들다 했다. 그러나 쳐지지 말고 함께 달리자고 했으나 경련정도가 심했던지 한차례 따라 붙더니만 쳐지기 시작했다.
소양2교를 건너 37km지나 그 지루한 직선로 접어들기 전 갑자기 재영이가 쳐지기 시작했다. 당황했다. 함께 가자며 따라 붙으라고 몇 번을 소리쳐도 점점 간격이 벌어졌다. 뒤따라오는 선수들에 가려 보이지 않기까지 한다. 정말, 안타까웠다. 대회전 그 감기만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어렵지 않게 편안하고 수월하게 달려나갈텐데...
너무나 안타까워 몇 번을 고개 돌려 함께 가려했지만 내 욕심에 앞서가는 발과 힘들어하는 재영이의 발 간격을 좁힐 수 없었다. 나보다 늦게 출발했으니 내가 좀 앞서가더라도 아직 남은 희망에 포기하지말고, 이 악물고 달려올 것을 기대하며...
38km를 지나며 시간을 확인하니 딱 20분 몇 초가 남았다.
헉헉거리며 사력을 다해 달렸다.
춘천경찰서 전 41km지점에서 시계를 보니 (13:58:?)약 7분 여 남은 것에 3시간내에 완주할 확신이 섰다. 이때부터 오히려 힘이 생기는 듯 했다.
운동장안으로 들어오며 양손을 치켜들고 혼자 포효했다. 트랙을 돌며 두 개구쟁이가 나를 찾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골인지점 약 100m전 우측에서 아내와 두 개구쟁이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자기야 여기! 아빠! 그쪽으로 달려가 사진사가 된 아내 앞에서 요염하게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피니쉬 전광판은 02:58:?를 가리켰고, 그 밑으로 오른손 치켜들고 파이팅을 외치니 왜 그리 통쾌하고 기분이 좋던지...
그 기쁨도 잠시, 초조하게 뒤따라오는 재영이를 애타게 기다리니 드디어 내가 생각했던 시간보다 다소 늦게 골인지점을 통과하는 재영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갈망하던 서브-3를 단 37초 때문에... 너무나 아깝고 속이 상했다.
상문이도 최선을 다했지만 근육경련으로....
오버페이스로, 후반을 힘들게 달릴 것으로 걱정했던 범수는 다행히 좋은 기록을 완주를 잘한 것이 고맙고 좀 덜 미안한 마음이 든다. 범수야, 잘 했어!
과대평가가 아니라, 상문이와 재영이는 잠재적 능력이 뛰어나다.
대회전 몸관리 미흡으로 좋은 경험을 얻었으리라 확신하고 싶다.
비록 서브-3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점점 그 기록에 가까워지고 있고,
이번 대회를 계기로 목표달성을 위한 감을 잡았으리라 믿고 싶다.
내 자신도 춘천대회는 부족하게 준비를 해 처음부터 확실하게 동반주를 하겠다고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내년 동아대회 때는 충분히 가능한 목표달성을 위해 나도 열심히 준비를 해 두 후배들과 처음부터 동반주 할 작정이다.
동마클 회원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
모두들 춘천대회 좋은 기록으로 완주하심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특히, 포돌이 이광옥, 이근서 형님! 첫 완주 축하드리고 정말 꿀맛 같죠? 꿀맛! 띠이잉!!!
대회 끝나면 닭갈비에 소주를 함께 해야하는데 그놈의 근무 때문에 먼저 내려오게 되어 너무나 미안하고 속상했습니다.
빨리 회복들 하셔야죠. 무리해서 저도 싹 죽겠습니다.
이번 한 주 푹 쉬시며 몸 잘 다스리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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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과 투혼 그리고 환희^^.
2003, 춘천마라톤대회 후기(예전과 지금)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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