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첫 춘마 풀 코스를 도전 할 때만 해도 완주 자체를 감지덕지로 생각했다. 사실, 잊지 못할 정도로 어렵고 힘겹게 머리를 올린 첫 완주였으니... 정말 완주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시 세상 모두를 얻은 기분이었으니까. 이후 4년이 지난 지금! 인간은 늘 도전과 모험 속에 산다고 해야 할지... 하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 목표 성취를 위해 지금까지 끊임없이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일까? 올해도 그 무더웠던 잔인한 여름이 지나면서 그 병(?)이 꿈틀 꿈틀거렸다. 금년 초 착실히 준비했던 동아대회를 갑작스런 대통령 탄핵으로 참가하지 못한 한을 풀고자 그간 비워뒀던 마음이 시간이 흐르면서 욕심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편하게 달리고 싶은 마음은 늘 한결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데 왜 때만 되면 이 병이 재발하는 것일까? 언제나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즐기는 달리기를 할 수 있을지? 동아대회 때와 같이 sub-3 페이스 메이커를 하겠다고 이미 자청을 했기에 약 대회 한달 전부터는 훈련을 게을리 할 수 없어 시간만 나면 늘 하던 등산과 수영, 사이클을 접고 거의 달리기에 모든 시간을 투자한 것 같다. 2004년 10월 25일! 새벽 03:50에 일어나 아내와 나는 춘천여행 준비에 분주했다. 나야 세수하고 내 짐만 챙기면 되지만 아내는 2%부족한 얼굴 예쁘게 치장도 해야하고 두 개구쟁이들 먹거리도 챙겨야 하는 등 할 일이 많다. 이른 새벽부터 씩씩거리는 모습에 미안함이 들 정도다. 남편 잘 못 만나 한참 단잠을 자야 할 이 시간에... 포돌이 가족이 운동장에 도착하니 05:30경에 출발할 버스주변으로 많은 회원들이 이미 와 있었다. 상식이 형님은 늘 그랬듯이 누룽지 막걸리를 버스짐칸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누룽지 막걸리! 그래 2말이니 오늘은 맛나게 마셔봐야지! 이른 새벽에도 막걸리를 보니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뒷좌석에 자리를 잡으니 자리가 베리 굿! 짱! 이다. 의자 두 칸을 옆으로 돌려나 놀기 좋게 배열된 자리는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래! 끝까지 이 자리 사수하는 것이 sub-3달성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렇다면 내려올 때 걍 망가져 버리는 것 아녀? 결국 그렇게 되었지만... 회원 및 가족을 가득 태운 동천관광버스는 새벽의 찬 기운을 가르며 동해고속도로를 열심히 빠져나가 곧 소사휴게소에 도착했다. 회원들은 105리 긴 항해를 탈 없이 완주하기 위해 각자 챙겨온 보약보다도 값진 탄수화물들을 열심히 뱃속으로 채웠다. 나는 단골아침 "2000원짜리 찹쌀떡"으로 대신했다. 회원들 음식을 몇 절음씩 얻어 먹다보니 배가 불러 찹쌀떡 3개를 비우지 못하고 버리기 아까워 끝까지 챙기다가 그만 진짜로 챙겨야 할 손가방을 휴게소에 두고 오게 되었다. 아뿔싸! 이게 뭐꼬! 정신머리가 없어도 그렇지... 손가방 안에는 실제 돈 되는 것은 하나 없지만 기스 난 선글라스며, 장갑 등 매 대회 때마다 애지중지하며 챙겨 가는 물건들이라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이미 버스는 소사휴게소에서 멀리 벗어나 있어 되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되찾는 것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큰놈(기표) 같은 반 성택이 아버님(임??형님!)이 삼척서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삼척마라톤클럽에 급히 연락을 주어 다행히 손가방을 나중에 되찾을 수 있었다. 형님에! 정말 고맙습메다. 때되면 제가 한턱 쏘겠습니더! 약 2시간 일찍 춘천에 도착한 우리는 버스짐칸에서 각종 짐들을 하나둘씩 챙겨 운동장으로 이동을 했다. 난 볼 것도 없이 누룽지 막걸리를 서둘러 챙겼다. 막대기에 꽃아 한 말 통을 둘이서 들고 가니 수많은 달림이 들이 여기저기서 웃음으로 한마디씩 거든다. 쩝쩝! 꿀꺽꿀꺽! 군침 흘리는 소리도 들린다. " 멋지게 완주하고 얼렁 오셔서 얼마든지 드시와요! " 오늘의 희망과 목표! 풀 코스 처음 도전하는 동마클 회원 셋, 직장 포돌이 선배님 세분의 성공적인 완주와 두 사람(?)의 sub-3 달성! 회원 및 포돌이 선배님들은 약 1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을 해 온 것을 알기에 멋지게 완주하고 완주후의 기쁨을 행복하게 만끽하리라고 하나 의심치 않았다. sub-3를 위해 열심히 훈련한 권석관 선배님과 철인운동을 같이 하고 있는 속초클럽의 장윤중 동생과 함께 달리며 초반오버페이스를 막아주고 최대한 35km까지 함께 달려주기로 했다. 사실 중간에 내가 먼저 퍼져 두 사람의 목표에 오히려 짐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내심 부담도 되었다. 드디어 11:00정각! B그룹에선 권선배, 윤중이와 나란히 선 나는 출발신호와 동시에 힘차게 운동장 밖으로 달려나갔다. 선두그룹은 sub-3주자와 sub-3를 목표로 하는 B그룹 선두주자들로 인해 초반 긴 언덕임에도 페이스가 무척 빨랐다. 긴 언덕 달림에 땀이 흐르고 심박수가 오르지만 주로를 꽉 메운 달림이 들로 앞서 달릴 수도 없었다. 언덕정상을 지나 내리막을 달리는데 권선배가 자꾸 앞서 나가신다. 다행이 뒤를 자주 보며 페이스를 줄이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5km 통과에 거의 22분대임에도 좀 늦었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러다 보니 언제 이 긴 여정이 끝나나하고 갑자기 맥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10km(41'47") 지나 앞서 sub-3를 목표로 하는 10여명이 함께 달리고 있었다. 이들만 따라가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어 서로 쳐지지 말고 끝까지 따라가자고 했다. 10여명이 한 무리되어 앞에서 정말로 잘 이끌며 잘 달리고 있었다. 좀 빠르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초반이고 뒤에 붙어 달리는 입장이라 따라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앞 주자를 따르다 보니 생각했던 1시간 27-8분대보다 1-2분 빨리 하프(1시간26분대/20km-01:22:26)를 통과한 것을 확인하고는 이러다 오버페이스 걸리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지금껏 오버페이스를 거의 하지 않았었는데 오늘 그 맛을 된통 보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오랫동안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일까? 24km를 지나 26km 향한 춘천댐 긴 오르막에서 갑자기 명치에 압박이 오는 듯한 통증으로 숨쉬기가 싶지 않았다. 첫 고비가 찾아왔다. 양어깨를 뒤로 쭉 펴보기도 해보고, 긴 호흡 내쉬기로 이겨보려 했지만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두 다리가 잘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두 사람이 신경 쓰일까봐 내색하지 않고 혼자서 거친 호흡을 진정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춘천댐 평지에 올라서 숨을 고르니 다행히 어느 순간 트림이 나면서 숨이 확 트이는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살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27-8km 즘에 앞선 주자들 몇 명이서 파워젤 하나를 조금씩 나눠 먹더니만 나머지를 나에게 휙 건네주며 먹으라는 것이 아닌가. 어떨 결에 받아들고 젤을 쭉 쫘 입에 넣으니 겨우 손톱만큼의 양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런지 얼마 못 가 또 명치에 통증이 느껴졌다. 으씨! 주는 것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먹은 양이 많은 것도 아닌데... 물이라도 한 모금 마셨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급수대 까지는 아직까지 약 2km이상이 남아있었다. 힘겹게 겨우 30km지점에서 도착해 물 몇 모금을 마시니 다행히 숨통이 트이는 듯 했다. 30km(02:04:02)지점 이후로 지금까지 한 무리 지어 열심히 달려온 sub-3 를 꿈꾸던 그룹이 하나 둘 쳐지면서 완전히 분해가 되었다. 앞서 끌던 선두가 좀 빨랐던 모양이다. 우리도 이들과 같이 오버페이스 한 것 아냐? 갑자기 걱정이 덜컥 들었다. 여기까지 이들과 함께 달리면서 평소보다 페이스가 빨랐던 것도 사실이고 지금 힘들어하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었으면 옆에 바짝 붙어 달리는 윤중이 에게도 "열라 힘들다"며 몇 번을 말했을 정도였다. 이쯤에서 권선배가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가 늦출 수도 없었다. 여기서 잠시라도 마음이 약해지면 모든 것이 숲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남은 후반이 더더욱 힘들어 질 것이 자명한 사실이었으니. 멀리 쳐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더 독하게 달렸다. 그러면서 출발 때 왼손에 챙겨간 파워젤을 조금 전 명치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 10km를 버텨보자고 힘겹게 입에 쭉 쫘 넣었다. 천만다행으로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잘 넘어갔다. 파워젤의 힘인가? 아님, 완주 후에 실컷 마실 누룽지 막걸리가 기다리고 있어서 일까? 힘은 무척 들었지만 내 두 다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치고 나갔다. 소양2교지나 37km를 통과하면서 시계로 3시간까지 약 30여분 이상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약간의 안심이 생겼다. 처음으로 물 스펀지 하나를 건네 받아 여유롭게 머리와 등에 뿌리고는 가장 힘든 구간을 맞이했다. 약 2km의 길고 평탄한 지루한 대로를 달리는데 나나 윤중이, 앞선 주자며 우리를 추월하는 이들 모두의 모습들이 말 그대로 처절했다.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이겨내는 외로운 전사들 모습 그 자체였다. 정말 쥑이는 "마의 구간"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온갖 고통을 인내하며 달리는 우리에게는 단지 극복되어지는 하나의 고비일 뿐이었다. 묵묵히 고통을 참으며 마지막 힘을 내니 어느새 구 버스터미널을 통과하고 있었다. 도로변 가득히 선 춘천시민들의 박수갈채는 춘천경찰서를 무사히 통과하는데 큰 힘이 되어주었고, 결승점 약 1km 여 미터를 남기고 운동장 옆으로 길게 선 수많은 달림이 가족들의 열렬한 응원은 내 마음속에 자리한 기쁨의 엔돌핀을 빠르게 자극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운동장트랙을 밟으니 희열이 느껴진다. 코끝이 찡하다. 조금 전까지 만해도 그리 힘들어했던 그 고통을 모두 잊은 채... 운동장 트랙을 돌며 내 몫을 다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맥이 풀리는 느낌이다. 윤중아! 앞서라! 뒤에서 폼잡으며 두 팔 번쩍 들고 결승점을 통과하니 먼저 들어온 윤중이가 환한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이루 말 할 수 없는 기쁨이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바로 이 순간을 만끽하기 위함이다. 윤중아! 정말 수고했다! 한편으로 미안하고 걱정했던 권선배님이 3시간 몇 십 초를 앞두고 결승점을 통과하는 것을 보고는 얼마나 다행스럽고도 기분 좋던지 또 이 기쁨을 한참동안 추 수릴 수가 없었다. 너무나 행복했다. 권선배 최고! 파이팅!!! 잠시 후 임진호 부회장님과 아내가 찾아와 우리를 격려해주니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가득 채워진 세상 속에 푹 빠져드는 듯 했다. 클럽텐트로 돌아와 형수님들이 맛나게 끓여놓은 오뎅 국물에 시원한 누룽지 막걸리 한 사발을 단숨에 꿀꺽꿀꺽 들이키니 얼마나 귀 똥 차던지... 그래 바로 이 맛 때문이여! 이 맛을 보려고 105리 힘든 먼 항해를 꾹 참고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역시 누룽지 막걸리 힘은 대단하고 최곤기라! 이 얏호! 아마추어의 최대목표인 sub-3!!! 대체 sub-3 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sub-3 를 해야하나? 이 고통의 대가로 충분하기는 한 걸까? 힘든 고통을 인내하며 일정량의 훈련만 소화하면 누구나 다 이룰 수 있지만 sub-3 는 그래도 너무나 힘든 것 같다. 언제쯤에나 이 욕심을 훌훌 털어 버리고 즐기며 달리는 자유인이 될 수 있을까?